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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맥 세상] 콜레스테롤 약, 그 위대한 미신

2016년 5월 '전원일기'로 널리 알려진 배우 이수나가 쓰러져 혼수상태라는 뉴스가 나왔다. 당시 언론들의 보도는 이랬다. "이수나는 고혈압 등 여러 가지 약을 복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의식 불명의 원인이 고혈압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수나는 고혈압으로 쓰러졌지, '고혈압약'의 부작용 가능성을 언급한 언론은 없었다. 중풍 건수의 13%가 뇌출혈이고 85%가 혈압이 낮아 뇌혈관이 막히는 뇌경색이며, 혈압약이 뇌경색의 주요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런 무책임한 기사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근 50대 중반인 한 친구가 다리를 절고 있다. 허벅지 근육이 빠져 제대로 걷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모른단다. 직감으로 물었다. "약 장기복용하는 거 있지?" 콜레스테롤 약을 수년째 먹고 있다고 했다. 콜레스테롤은 세포와 세포막을 구성하는,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성분인데 이를 약으로 없애니 얼마나 부작용이 많겠나. 근육이 녹는 횡문근융해증(rhabdomyoysis)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설명해줬다. 뇌세포도 녹이니 치매와 파킨슨병의 원인도 된다. 위의 사례들은 약 부작용에 대한 우리들의 무신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혈압약 부작용에 대해선 몇차례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번엔 콜레스테롤 약에 대한 정보를 간략하게 소개한다. 영양학자 조니 보든 박사와 심장전문의 스티븐 시나트라 박사가 쓴 '의사가 말하지 않는 콜레스테롤의 숨겨진 진실-콜레스테롤 수치에 속지 마라(원제:The Great Cholesterol Myth)에 나오는 내용이다. #200년 전 피를 뽑는 치료법을 맹신했던 의사들은 거머리를 몇 마리 사용해야 하는지, 어디서 피를 뽑아야 효과적인지를 놓고 온갖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인후염에 걸렸을 때 주치의 역시 그의 피를 2리터 가량 뽑아내 목숨을 잃게 했다. 오늘날에도 수천, 수만 명의 의사들이 집단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질병'을 위험하게 치료한다. 그 존재하지 않는 질병은 '체내 콜레스테롤 증가'다. #콜레스테롤에 대한 집단적 오해는 65년 전 안셀 키즈 박사의 '포화지방이 콜레스테롤을 늘리고 이는 심장질환으로 이어진다'는 '지질가설'에서 비롯됐는데 이 가설을 사실로 바꿀 만한 근거는 아직 없다. 밴더빌트 대학 생화학자 조지 만 박사는 콜레스테롤을 심장질환의 지표로 보는 가설은 미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사상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말했다. #콜레스테롤은 세포와 세포막, 뇌세포를 이루는 물질로 생명유지에 꼭 필요하다. 또한 각종 호르몬으로 바뀌어 인체의 대사활동에 필수적이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보다 수명이 길었다. #콜레스테롤 저하제인 스타틴계 약물의 순기능은 거의 없으며 부작용은 엄청 나다. 근육 약화, 인지 능력 하락, 심장 기능에 중요한 코엔자임Q10 고갈, 성기능 약화, 암 및 당뇨 위험 증가 등 수많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듯 많은 부작용을 의사들로부터 왜 쉽게 들을 수 없을까. 의학박사 비어트리스 골롬 박사는 환자가 보고하는 부작용을 의사들이 어떻게 처리하는지 파악했다. 연구에 참여한 환자들은 근육통, 기억력 상실 등의 증상을 138명의 의사에게 보고했는데 65% 내외의 의사들이 약물 관련성을 무시했다. 약품의 유해 사례를 보고하는 미국식품의약국(FDA)의 '메드와치'에도 보고하지 않았다. 저자들은 의사들을 직접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의사 대부분이 '부작용이 심각한 수준으로 축소 보고된다'고 인정했다. 이 책에는 '심장병 전력이 있는 중년' 이외에는 콜레스테롤 약을 먹지 말아야 할 이유들이 차고 넘친다. 올해 건강하게 지내려면 의사 말만 맹종 말고 이런 책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의학 박사 이원영 / 논설실장·한의학 박사

2018-01-09

[진맥 세상] 자기 수명 결심하기

결심을 하는 계절이다. 건강을 위하여, 돈을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여러 이유들이 결심의 배경이 된다. 아마도 새해 첫날을 기해 남은 담배와 라이터를 쓰레기통에 집어 던진 사람들, 무척 많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결심들은 1년이 되기 전에 성공과 실패의 가닥이 잡힌다. 성공하면 스스로에게 큰 자존감을 주겠지만 실패하면 자괴심도 든다. 결심은 성공하는 예보다는 깨지는 게 다반사다. 그래서 후회하고 또다시 결심하고 하는 게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그런데 이런 건 어떨까. 결심하는 것 자체가 흐뭇하고, 1년 안에 금세 실패와 성공의 판가름이 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성공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그런 결심 말이다. 실제로 그런 결심을 세운 사람이 있다. 현대단학과 뇌호흡 명상법을 개발한 한국뇌과학연구원 이승헌(68) 원장이다. 영성가 답게 그는 수많은 자아계발 서적을 집필했는데 이번엔 '나는 120살까지 살기로 했다'는 제목의 책을 냈다. 책 제목을 보았을 때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솔직히 '그렇게 오래 살아서 뭐 할려구…' 하는 생각도 든 게 사실이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며 이 원장 개인이 왜 그런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니 '120세 살기'는 허튼 결심이 아님을 알게 됐다. 그는 80살까지는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고 그 이후는 삶의 마무리를 잘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다가 102세가 된 이종진이라는 분과 골프를 함께 친 사건(?) 이후로 수명에 대한 생각이 확 달라졌다. 이종진 옹은 카트도 타지 않고 4마일 코스를 모두 걸었다. 매일 아침 한 시간씩 산책을 빠뜨리지 않는다고 했다. 골프 회동 이후 이 원장은 '나도 혹시 100살까지 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는 하프 마라톤인 줄 알고 열심히 골인 지점으로 달려왔는데 사실은 풀마라톤임을 알게된 것과 같은 당혹감을 느끼게 했다. 그는 나이에 대한 성찰을 거쳐 수명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 시간이라는 적극적인 생각으로 바꾸기 시작했고, 80세 이후 계획이 전무했지만 120세까지 수명을 설계한 지금은 그 어느때보다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120세 수명에서 그의 지금 나이는 아직 청춘이니까! 120세는 대충 나온 숫자가 아니라 대다수 동물들이 성장 기간의 여섯 배까지 살 수 있는 점과 현대의 수명 연장 트렌드를 감안해 과학계가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미래 수명이다. 또한 장수국가 일본에서 유행한 말이지만 자기 나이에 0.7을 곱한 것이 실제 체감 나이라는 말도 있다. 예를 들어 60살이면 예전의 42살 정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장수시대가 도래한 것인데 그걸로 치면 미래의 120세는 지금이 84세에 해당하는 셈이니 얼추 맞아 떨어진다. 산은 높이 올라갈수록 시야가 넓어지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수명도 소극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도적으로 설정하면 앞으로 해야할 일의 종류와 범위도 극적으로 달라질 것 같다. 이승헌 원장은 수명을 80정도로 생각했을 때는 단기간의 계획에 치중하고 중장기적인 비전을 품지 못했지만 120세까지 살기로 결심한 다음에는 뉴질랜드 어스 빌리지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것 등 비전과 꿈의 확장을 경험하고 있다. 또한 수명에 대한 생각만 바꾼 것 뿐인데 그것이 30년은 더 젊어진 것 같은 회춘 효과를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꼭 120살까지 설정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건강관리만 잘 하면 100세 시대는 현실이 된 시대다. 몇살까지 살 것인가 결심하는 것만으로도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있음을 자각하고 보다 생산적인 삶을 계획하지 않을까. 이원영/논설실장

2018-01-02

[진맥 세상] 나를 진맥하다

한의학 공부한 것을 계기로 건강 이론과 사회 이슈, 또는 인생이란 문제를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 겉만 다스리는 대증 치료에서 벗어나 참건강을 찾는 길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 끝에 '진맥 세상'이라는 이름으로 칼럼을 써왔습니다. 진맥은 병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건강을 해치는 이면은 무엇인지, 사회를 골병들게 하는 이면은 무엇인지, 남북화해를 가로막는 이면은 무엇인지 짚어 왔습니다. 의사의 입장에서 환자의 '병'을 진맥하고 처방한 셈입니다. 그러나 정작 내가 나를 진맥한 적은 없었습니다. 나를 곪게 했지만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올해를 끝으로 도려내야할 악성 종양은 무엇인지 스스로 진맥하려 합니다. 내년부터는 '바빠'라는 단어를 잊으려 합니다. 올해도 바쁘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바쁘다는 핑계를 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건진 것은 무엇인지 내 손에는 별로 남은 게 없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룬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나중에, 나중에 하면서 결국은 만나지도 못한 사람이 숱하게 많습니다. 이번 주말에, 다음 주말에 하면서 결국은 집안 정리 제대로 한번 못했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나중에 읽자, 하며 사모은 책이 읽은 책보다 10배는 많은 것 같습니다. 책장을 보며 '죽을 때까지 이 책들을 다 읽을 수 있을까' 회의까지 듭니다. 바쁘다는 것은 실제 상황이라기 보다는 마음의 상태인 것 같습니다. 바쁘다는 자기 최면은 시간을 내기 싫다는 핑계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요.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시간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바쁠 게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내가 내뱉은 바쁘다는 말에 상대방이 느꼈을 소외감이나 섭섭함을 생각하면 미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내년부터는 죽었다 깨어나도 바쁘다는 소리를 안 할 작정입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못한 것이 너무 많은 올해가 원망스럽습니다. '난 몰라'라는 말도 버리려 합니다. 모른다, 관심 없다는 말은 참으로 편리한 말입니다. 그 한마디만 하면 나는 완전히 분리되어 홀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편리성 때문에 숱하게도 모른다, 관심 없다를 남발한 것 같습니다. 잠깐은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런 단절의 욕구 때문에 나는 하나도 성장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모른다, 관심 없다며 선을 긋는 바람에 나의 뇌는 지식의 습득을 멈추고 정지되어 버렸습니다. 나의 무관심 때문에 또한 상처 받았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미안할 따름입니다. 내년부터는 모르면 알려고 노력하고, 관심이 없다면 눈을 더 크게 뜨고 귀를 더 열어 관심을 가지려 합니다. 그것이 커뮤니티로 살아가는 인간의 도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못한다'는 말도 입밖으로 꺼내지 않을 작정입니다. 사실 올해도 못한다고 했다가 해보니까 의외로 쉽게 되는 일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수년째 삐걱거리는 욕실 여닫이 문을 단돈 2달러 들여 작은 도르레 하나 바꿔 고쳤습니다. 고장난 싱크대 음식분쇄기도 직접 해보니 교체할 수 있었습니다. 수년째 망설였던 칼럼집 발간도 왈칵 저질러보니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모두가 엄두를 내지 못 하던 것들이었지만 막상 소매를 걷어붙이니 불가능해 보인 것들이 가능의 대상으로 바뀌었습니다. 고 정주영 회장의 "하기는 해봤어?"란 명언이 떠오릅니다. 포기하지 않을 거라면 못한다 하기 전에 일단 해보려합니다. 할까말까 하는 것에 대해선 절대 못한다는 말을 꺼내지 않을 작정입니다. 바빠, 몰라, 못해 이 세마디 올해의 종양을 잘라내고 새해에는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뵙겠습니다. 이원영 / 논설실장·한의학 박사

2017-12-27

[진맥 세상] 암 치료는 왜 획일화 되었나

타이 볼링거(Ty Bollinger)의 직업은 공인회계사지만 지금은 자연건강 연구가 및 저술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가 건강 전문가로 유명세를 얻게 된 데는 슬픈 가족사가 있다. 지난 1996년 아버지가 위암 치료를 받다가 세상을 떠난 것을 시작으로 이후 8년 동안 할아버지, 할머니, 사촌, 삼촌, 어머니 등 무려 7명의 가족을 암 치료 과정에서 잃은 것이다. 볼링거의 가족들은 현대의학이 제공하는 암 치료법인 수술.방사선.화학요법 등을 두루 받았지만 살아나지 못했다. 볼링거는 이후 기존 암 치료법에 회의를 품고 이를 대체할 치료법과 의료 산업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지난 20년 간 수많은 전문서적을 섭렵하고 국내외 의료계 종사자 및 소생 환자들을 인터뷰했다. 그 결과물인 저서 '암 자연치유 백과(Cancer: Step outside the Box)'와 '암의 진실(The Truth about Cancer)'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또한 세계 곳곳을 누비며 대체치료의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도 유튜브에서 엄청난 반응을 얻고 있다. "내가 알아낸 사실들은 충격 그 자체였다. 수많은 대체요법이 암 치료에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 말기암 판정을 받은 수천 명의 환자들이 건강을 되찾았다는 것, 주류 의료계가 이런 치료법을 탄압해온 역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체 치료법이 널리 활용되었더라면 나의 부모들이 살 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면 서글플 따름이다." 볼링거는 의사들 자신들도 기피하는 암 치료법을 환자들에게 적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2014년 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을 통해 공개된 조사에 따르면 1000여 명의 암 전문의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본인이 암에 걸리면 화학요법을 받지 않겠다고 답한 비율이 88.3%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의사 본인도 거부하는 치료법을 매뉴얼에 따라 환자에게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치료법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볼링거는 1910년 발표된 '플렉스너 보고서'에서 뿌리를 찾는다. 이 보고서는 당시 거대 석유재벌이던 록펠러와 철강 재벌 카네기가 의학협회와 손잡고 에이브러햄 플렉스너라는 사람을 고용해 155개 의과대학의 교수법에 대한 평가를 한 것이었다. 목적은 다양한 의료 시스템을 표준화하고 석유에서 추출한 특허받은 약품만을 치료제로 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들은 표준 의료 시스템을 따르는 대학들에는 수백만 달러씩 후원했다. 그리고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표준 의료만이 과학적이고 나머지는 없어져야 할 의료로 낙인 찍었다. 보고서 이전엔 다양한 의료 행위가 공존해오던 미국이었지만 보고서 이후 수만 명의 약초 치료사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정골요법사나 동종요법사 등은 돌팔이로 매도되며 '화학약제 처방' 치료 외에는 설자리를 잃고 말았다. 환자를 화학약품으로 치료하는 이러한 독점의료체계의 구축으로 재벌과 제약회사는 막대한 수입을 올리게 된다. 동종요법 의사인 로버트 스콧 벨 박사는 "석유화학계 약물을 이용한 의학교육이 경쟁 상대를 모두 없앰으로써 독점 체제를 탄생시켰다"고 개탄했다. 볼링거는 '암의 진실' 3부에서 화학약품을 쓰지 않고 뚜렷한 치료 효과를 내고 있는 전 세계 대체의학 현장을 소개한다. "병을 어떤 방법으로 치료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개인이 선택할 일이지 선택할 후보를 제한한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자유와 정의를 바탕으로 세워진 미국에서 안전하고 효과적인 진짜 치료를 받기 위해 다른 나라로 가야 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암 치료법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면 볼링거의 책이나 '암을 고치는 미국 의사들' 같은 책을 참고하면 폭넓은 정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원영/논설실장·한의학 박사

2017-12-19

[진맥 세상] 또 하나의 은퇴 전략 '요리'

악역 배우로 잘 알려진 최준용(51)씨는 17년 전 이혼하고 부모집에 얹혀 살고 있다. 평생 요리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지라 아직도 73세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아버지와 함께 얻어 먹고 있는 신세다. 어머니는 자식과 남편이 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내가 천년 만년 살 것도 아니고 몸도 움직이는 종합병원인데…남자들도 요리에 취미를 붙이면 재미있을 텐데…." 어느날 최씨는 부모님께 깜짝 선물을 선사하리라 마음먹는다. 그가 직접 만든 요리를 부모님께 대접하는 것이었다. 음식재료 구입부터 요리 순서까지 전문 요리사의 지도를 받았다. 그래서 내놓은 첫 요리가 전복과 낙지를 넣어 만든 '전복영양솥밥'. 부모는 깜짝 놀라며 "너무 맛있다" "앞으로도 자주 해다오"를 연발한다. 어머니는 "평생 처음 아들이 해준 밥을 먹으니 너무나 행복하다"고 웃음을 그치지 않는다. 요리를 해서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는 셰프의 마음을 최씨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다양한 술안주 요리로 친구들을 놀라게 하는 수준이 됐다. MBC 다큐 '남자, 요리와 사랑에 빠지다'에 나오는 내용이다. 요리를 시도하기 전, 친구들로부터 '집안이 편의점'이라는 조롱을 들을 정도로 온갖 1회용 식품들을 애용했던 최씨가 '요리로 행복해질 수도 있구나'로 변화하는 과정은 불과 한 달 정도다. 사실 요리는 매우 이타적인 행위다. 요리사는 자신이 맛있게 먹겠다는 마음보다 다른 사람이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더 앞선다. 어머니들이 식구들을 먹인다는 동기 없이 혼자 밥을 먹는다면 '밥에 물 말아 김치 얹어 먹는' 걸로 때우기 다반사일 것이다. 요리는 내 수고를 통해 타인이 행복해하고,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행위이기 때문에 사심과 이기심이 자리를 틀 여지가 없다. 결혼을 하지 않은 후배들에게 가끔 해주는 얘기가 있다.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하면 실패할 확률이 적을 것이라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 즐기며 자기 혀를 충족시키려는 미식가보다는 음식을 만들어 남의 혀를 즐겁게 해주려는 심성이 훨씬 배려심이 많을 것이라고. 요리가 좋은 또 하나는 '창조적'인 행위라는 점이다. 여러가지 원재료를 이용해 그럴 듯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예술의 창작 과정과 비슷하다. 사극 '대장금'에서 한상궁이 장금에게 요리를 가르칠 때 "요리는 만드는 것이 아니고 (머릿속에서) 그리는 것이다"고 한 말은 요리가 창작임을 선명하게 설명한 것이다.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되면 요리에 사용하는 주방기구는 물론이고, 음식을 담을 그릇 등으로 관심의 폭이 넓어진다. 한국에서는 요리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남자들이 요리에 도전하는 사례가 늘면서 그릇 전문점을 방문하는 남자들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100세 장수시대가 도래한 이 시절, '요리하는 남자'가 될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하루 세끼 꼬박꼬박 아내의 신세를 지는 소위 '삼식이'가 되어 구박과 핀잔을 받는 남편이 되지 않기 위해서도 그렇다. 주방 근처에도 가지 않던 남편이 어느날 앞치마를 두르고 아내를 위해 식탁을 마련한다면 그 가정의 행복지도는 다시 그려질 것이다. 게다가 요리는 얼마든지 감각의 변화를 부려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으니 그 창조적 행위의 만족감은 얼마나 크겠는가. 요리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맛있게 함께 먹는 시니어 부부의 모습은 그 자체로 정이 넘친다. 맛있는 걸 찾아다니기 보다는 맛있는 것 만드는 사람이 되어보겠다는 송년 결심은 어떨까. 이원영 / 논설실장

2017-12-12

[진맥 세상] 먹기 위해 사나, 살기 위해 먹나

"다 먹자고 하는 짓인데…" 먹자, 먹자, 온통 먹자판이다. 한국 TV방송은 채널만 돌리면 소위 '먹방'이다. 고상한 산천기행 프로나, 산속에서 혼자 사는 애잔한 스토리나 결국은 먹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카메라 앵글은 스크린 속 맛을 화면 밖으로 살려내는 요술을 부려 침샘을 자극한다. 맛을 장려하는 '공익' 방송에 격려 받은 이들은 곳곳의 맛집을 탐색한다. 요리에 취미 없던 남자들까지 주방으로 불러낸다. 가히 전 국민이 맛의 달인이요, 요리사가 되어가는 시절이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먹는 것인지 헷갈린다. 캘리포니아 솔크 연구소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사람들의 하루 일상을 분석했다. 놀랍게도 대부분이 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절반 정도는 잠 자기 전 2시간 내에도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이다. 이렇듯 사람들은 본인이 잘 의식하지도 못하면서 줄기차게 '먹어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시간제한 다이어트'인데 먹는 시간대를 하루 10~12시간(예를 들어 아침 8시~저녁 8시)으로 줄이기만 해도 체중 감량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이다. 자고로 한의학에선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 했다. 음식과 약의 근원은 같다는 것이다. 잘 먹으면 보약이 되지만 잘못 먹으면 독이 되어 병을 부른다는 의미다. 식약동원은 지금도 불변의 진리다. You are what you eat 이라는 표현이 있다. '먹는 것이 바로 당신'이라는 뜻이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건강.표정.피부.성격.수명 모든 것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먹는다는 행위, 과연 우리는 생각이나 좀 하면서 먹는 것일까. 입이 원하는 대로 먹어주면 몸에 좋은 것일까. 우리 몸으로 흡수되는 외부의 물질은 크게 두 가지다. 음식과 공기다. 공기는 산속으로 들어가 살지 않는 이상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음식은 나를 살리기도 병들게도 하는 것인데 내가 조절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음식을 조절.통제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먹으면 몸이 알아서 다 소화시켜주고 흡수하고 배설해주는 것 아닌가. 절반 정도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먹은 것에서 필요한 것을 흡수하고 불필요하고 나쁜 것을 걸러내는 과정에서 몸은 엄청난 사투를 벌여야 한다. 먹은 것을 체로 거르듯 스무스하게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특히 대량생산된 채소.육류에 스며든 농약.항생제.성장촉진제, 각종 제조식품의 식품첨가물, 온갖 종류의 약, 이런 것들이 몸속으로 들어가면 흡수 과정에서 국경수비대 역할을 하는 면역체계가 시달릴 수밖에 없다. 매일 그런 게 반복된다고 생각해보라. 그래서 음식은 만병의 원인이고, 만병의 치료제다. 먹는 것의 중요함이 이러할진대 실상은 어떤가. 입맛 당기는 대로 먹는다. 가공된 맛에 '중독' 되어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몸을 해치는 정도만 다를 뿐 술.담배.마약이 당긴다고 흡입하는 것이나 본질은 같다. 하나 더. 적어도 먹는 것은 싼 것만 찾지 말자. 비교적 비싼 값의 유기농 식재료를 주로 취급하는 홀푸즈마켓이나 트레이더조에서 꼼꼼하게 식품을 살펴보고 구입하는 백인들이 많다. 한인 마켓에선 유기농 채소 코너가 없거나 있더라도 고객의 손길이 닿지 않아 시들시들한 장면이 대조적이다. 다른 데서 아껴서 먹는 것은 비싸더라도 몸에 좋은 것을 고르는 지혜가 필요하다. 먹는 것은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먹기 위해 살지 말고 살기 위해 먹자. 이원영 / 논설실장·한의학 박사

2017-12-05

[진맥 세상] 시든 잎에 녹색 칠하기

어린 시절 우루과이에 살았던 알레한드로 융거(심장내과 전문의)는 기억을 떠올린다. 페르민이라는 정원사 할아버지다. 융거는 페르민 할아버지가 꽃나무들을 관리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잎사귀와 가지가 누렇게 변했는데 그쪽은 바라보기만 하고 뿌리가 박혀 있는 땅에 물을 뿌리고 비료를 주는 것이었다. 어린 융거는 이해할 수 없었다. 융거는 왜 시든 이파리와 가지를 돌보지 않고 뿌리만 만지느냐고 물었다. "나무가 아픈 것은 모두 뿌리에서 시작되는 거야. 뿌리가 건강하면 나무도 건강하단다." 융거는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할아버지의 손길이 닿는 나무들은 싱싱하게 되살아났다. 융거는 뉴욕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수련의 시절 몸을 혹사하는 바람에 심각한 건강의 위기를 맞았다. 살이 찌고, 앨러지가 생기고, 소화장애, 거기다 우울증까지 겹쳐 만신창이가 되었다. 융거는 심장 전문의 길을 포기하고 인도로 떠나 전통의학인 아유르베다와 한의학을 공부했다. 온전한 건강을 회복한 융거는 몸을 망치는 것은 불량음식을 포함한 온갖 독소들이며, 이같은 독소를 미리 막고 배출시키는 것만이 질병 예방과 치료의 길임을 스스로의 몸을 통해 깨닫게 됐다. 미국으로 돌아온 융거는 '클린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클린'이라는 책은 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융거는 20여년 간 환자를 돌봐오면서 다시 페르민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훌륭한 의사는 훌륭한 원예사와 같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런 예를 든다. 어느날 나뭇잎이 시들어가는 것을 발견하고 원예사를 불렀다. 그런데 나뭇잎을 자세히 관찰한 원예사가 "잎을 녹색으로 칠하면 싱싱해 보일 것입니다"라고 했다면 그를 믿겠는가. 융거는 현대의학이 기술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했지만 '환자'를 바라보지 않고 '질병'만 바라보는 접근방식을 고수하는 바람에 시든 이파리에 녹색칠을 하는 엉터리 원예사 같은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녹색 칠하는 정도가 아니라 병든 가지를 잘라내고 다른 가지를 갖다 붙이기도 한다고 개탄한다. 결국 병의 '증상'만 없애려는 의학이라면 시든 이파리에 녹색칠을 해 결국은 죽게 만드는 사이비 원예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융거에 따르면 우리 몸이 외부의 물질을 받아들이는 경로는 4군데다. 공기나 이물질과 접촉하는 피부, 공기를 흡입하는 폐, 음식을 받아들이는 장(위·소·대장 포함), 여성 생식기다. 피부와 폐를 통해 흡수되는 것은 통제하기 어려운 불가피한 요소다. 그러나 장으로 보내지는 음식은 우리 몸에 주입되는 가장 많은 외부 물질인 동시에 얼마든지 관리할 수 있다. 그의 이론을 압축하면 음식을 통해 각종 독소가 몸에 유입되고, 이것이 대부분의 질병을 부르기 때문에 근본적인 질병 예방과 치료는 세심한 먹거리로 독소 유입을 줄이고, 해독하는 것이다. 각종 식품첨가물이 가미된 가공식품, 농약과 항생제 범벅인 채소와 육류 등은 몸에 독소를 집어넣는 1등 공신이다. 융거는 유기농 채소 위주의 클린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고질병들을 치료하고 있다. 한국의 최지훈이라는 독자는 클린 프로그램을 통해 달라진 점 5가지를 밝히고 있다. 의욕과 활기가 넘친다/쉽게 잠들고 아침에 푹 잔 느낌으로 일어난다/자주 체하던 증상과 두통이 사라졌다/피부에 윤기가 흐르고 트러블이 생기지 않는다/몸에 좋은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이 당긴다. 시든 잎을 녹색칠로 살릴 수 없듯, 병든 몸은 독소를 '클린'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그의 의학적 혜안에 크게 공감한다. 참고로 그가 권하는 아침 셰이크는 정수한 물, 너트 밀크, 시금치, 아보카도, 견과류, 단백질 분말, 아마씨, 천일염 약간 등을 믹서로 갈아 만든다. 이원영 / 논설실장·한의학 박사

2017-11-28

[진맥 세상] 고혈압약 '미끼'는 또 던져졌다

생각해보자. 10층 짜리, 20층짜리 아파트가 있다고 치자. 10층까지 수돗물을 밀어올리는 수압과 20층까지 올리는 수압이 같을 수 있을까. 높은 층까지 수돗물을 밀어올리려면 더 많은 압력이 필요할 것은 자명하다. 사람의 신체 구조와 생리적 환경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이는 장신에 비대하고, 어떤 이는 단신에 홀쭉하다. 누구는 육식 위주의 과식 습관으로 혈액이 걸쭉하고, 누구는 채식 위주의 소식으로 피가 상대적으로 맑다. 어리면 혈관이 부드럽고 나이 들수록 딱딱해진다. 혈압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 피를 온몸으로 순환시켜주기 위한 심장의 압력이다. 체형이 크거나 혈액이 탁하거나, 혈관이 딱딱한 사람의 피를 돌려주려면 강한 심장의 압력이 필요할 것이요, 그 반대라면 낮은 혈압으로도 가능하다. 사람마다 혈압이 제각각 나타나는 것은 그래서 지극히 정상이다. 그런데 의료계에서는 '정상혈압' 기준치라는 것을 획일적으로 정해 놓았다.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는 혈압을 하나의 기준에 맞춰 정상, 비정상으로 나눈다는 것 자체가 상식에 맞지 않는다. 최근 또 하나의 '고혈압 뉴스'가 매스컴을 뒤덮었다. 기존의 '정상혈압' 범위였던 140(수축기)/90(이완기)을 130/80으로 낮춘다는 것이었다. 미심장협회(AHA)와 미심장병학회(ACC)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이었다. 이유인 즉 수축기 혈압 130~139가 그 이하인 경우보다 심근경색·뇌졸중·신부전 등이 2배로 높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위험을 무릅쓰지 말고 혈압약을 먹으라는 얘기다. 이에 따라 미국에선 성인 3000만 명 이상이 새로 '고혈압 환자' 군에 포함됐다. 성인 인구의 32%이던 고혈압 환자군이 46%로 늘어났다(제약회사의 함박웃음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왜 혈압약으로 인한 부작용은 얘기를 하지 않나. 혈압약을 먹게 되는 것은 '혈압이 높아 뇌혈관이 터질 수 있다'는 공포심 때문이다. 그러나 뇌졸중 중에서 혈관이 터지는 뇌출혈은 13% 정도에 불과하고, 85%는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이다. 뇌경색은 혈압이 높아서가 아니라 혈류가 느려져 혈관에 찌꺼기가 쌓여 발생한다. 일본 도카이 대학 연구에 따르면 혈압약 복용자는 비복용자에 비해 뇌경색 발생률이 두 배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고혈압약 부작용 때문에 쓰러져도 '고혈압으로 쓰러졌다'고 세상에 전파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혈압약으로 낮춘 혈압으론 뇌세포 구석구석까지 피를 돌리지 못한다. 뇌세포의 괴사가 조금씩 발생하고 이것이 치매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 부작용을 우려하는 의사들 소견이다. 또 하나. 이번에 새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미심장협회가 과연 인류의 건강을 위하는 프로페셔널 단체일까. 이 단체는 연간 10억 달러 이상을 제약회사와 식품업계로부터 지원받는 로비 단체에 불과하다(조한경 저 '환자혁명'). 제약회사, 각종 의학협회, 식품의약국(FDA)은 서로 갈고리처럼 물고 물리는 거대한 이익공동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자, 미심장협회가 제약회사 편일까, 인간애 넘치는 순수한 단체일까. 비판도 거세다. 미국 내과학회 니스 댐르 회장은 "기준을 낮춘 근거가 희박하다. 인위적으로 낮출수록 부작용도 커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고혈압은 병이 아니다'라는 책을 쓴 마쓰모토 미쓰마사는 말한다. "약간 신경 쓰이는 정도의 혈압이 큰 병을 일으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고혈압증이야말로 제약회사의 이익 때문에 만들어진 허구의 병이다. 이것이 40년 이상 10만 명을 진찰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제약회사들의 낚시에 쉽게 낚이지 말아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이원영 / 논설실장

2017-11-21

[진맥 세상] 텅 비고 충만했던 어느 결혼식

페이스북에서 날카로운 현실 비평으로 1만여 명의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는 박찬운 교수(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지난달 30일 본지 오피니언에 '영혼 없는 대한민국 결혼식'이라는 글을 올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이곳 한인사회는 한국만큼은 아니더라도 아직도 한국식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허례허식의 관행이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박 교수는 "사실 나는 결혼식에 가면 우울할 때가 많다. 그 많은 하객 수에 놀라고 그 호화스러움에 주눅이 든다…지금 같아서는 내 자식 결혼식을 치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결혼식은 낭만도 즐거움도 찾을 수 없는 그저 허례허식일 뿐이다"고 일갈했다. 그는 이어 "이렇게 결혼하는 자녀들의 인생도 딱하긴 마찬가지다. 이런 결혼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할 것인가"라고 개탄했다. 그의 글을 읽은 이들은 폭발적인 공감을 보냈지만 막상 자녀 결혼식이 내 문제가 되면 그런 관행에서 과감하게 이탈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는 반응도 있었다. 박 교수가 탄식했듯 한국의 '영혼 없는' 결혼식 관행을 과감하게 거부하고 '텅 비었지만 충만한' 결혼식을 올린 40살 동갑내기 커플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생활 근거지인 부산에서 일주일 일정으로 왔다. 지난 토요일 LA인근 말리부에 있는 페퍼다인 대학교 예배당에서 주례를 맡은 최재영 목사 부부와 축도를 부탁받은 동료 목사 부부, 김주석(성서원어 교사)·이지원(미용사) 커플만 참석한 결혼식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두 사람은 돈과 물질이 판치는 한국사회의 결혼식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늦깎이 결혼식을 앞둔 커플은 그들의 결혼식을 어떻게 치를 것인지 고민하다 한국에서 알게 되었던 LA의 최 목사에게 약식 결혼식 주례를 부탁한 것이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 웨딩 복식을 나름대로 준비를 해와 결혼예복 흉내도 냈다. 하객도, 예물도, 축의금도, 꽃단장도, 웨딩마치 음악도, 축가도 없었지만 "멋지고 성스러운" 결혼식이었다며 부부는 오히려 감격해했다. 신혼부부는 경비를 아끼기 위해 중국을 경유하는 저가 항공을 이용했고, 3박 4일 서부여행을 마치고 돌아간다. 혹시 결혼식을 앞두고 집안의 반대나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전혀 아니고 단지 허례허식이 싫어서 둘이 결정한 것이고, 양가에서도 흔쾌히 허락했다고 한다. 물론 한국에서 다시 한번 결혼식을 치를 계획은 전혀 없단다. 주례를 본 최 목사는 "많은 주례를 섰지만 지금까지 그 어느 결혼식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자유함과 성스러움이 식장을 압도했다"고 감격을 감추지 않았다. 감동은 결혼식으로 끝나지 않았다. 결혼식 이틀 전 최 목사와 우연한 식사 자리에서 한국서 온 한 커플의 결혼식 계획을 들은 윌리엄 이(55)씨는 "우리집에서 피로연을 엽시다"고 전격 제안했다. 알지도 못하는 신혼 커플을 위해 정성을 다해 조촐한 바비큐 파티를 열어준 것이다. 이씨와 친구인 나는 이 자리에 초대받아 참으로 비현실적(?)인 즐거움을 함께 나누었다. 가정집 피로연 접대를 받은 이 커플의 표정 역시 감격스러움 그 자체였다. 김주석·이지원 커플은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한국사회와 교계에 신선한 감동을 선사하는 부부가 될 것이라 믿는다. 이원영 / 논설실장

2017-11-07

[진맥 세상] 글, 노년의 행복 자격증

모터사이클 마니아인 친구는 굉음과 함께 달리는 그 짜릿한 재미에 비할 것이 없다고 했다. 그가 글을 읽는 것은 아주 낯선 작업일 수도 있겠다. 그가 글(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그에게서 카톡이 왔다. "사실 신문에서 무엇을 얻고 자시고 할 만큼 적극적인 사회생활을 안 하고 있었는데 친구의 도움으로 나도 무엇인가 또는 어떤 부분인가 (세상에) 참여하고 살고 있다는 느낌을 친구가 권유한 신문으로부터 느껴보며 살아야 할 것 같으이. (신문을 읽게 해준) 친구의 마음을 고맙게 생각하며 또다른 느낌의 아침을 맞을 수 있을 것 같네…고마우이" '또다른 느낌의 아침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친구의 말. 신문을 만드는 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더 이상의 찬사가 없다. 신문을 통해 일상에 없던 작은 기쁨이 그에게 생겨난 것 같아 흡족했다. 글을 쓰는 일을 하다보니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글이나 책을 소재로 삼는 때가 많다. 특히 일반 오피니언 독자 투고를 담당하며 글을 쓰고 읽는 재미를 만끽하면서 사는 시니어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노년의 삶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눠 글과 함께 하는 노년/글을 등지고 사는 노년으로 구분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최근에 기고를 보내기 시작한 정모(여)씨는 70대 중반. 손글씨로 보낸 첫 기고가 지면에 반영된 날 "너무 기뻐서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남편과 함께 신문을 구석구석 읽는 것이 일과의 커다란 기쁨이라면서 "신문은 내 가족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반려견이 있듯 그에게 신문은 반려 '문'인 셈이다. 80대 중반인 나의 장인 어르신은 "신문 읽는 즐거움을 아침에 다 누리는 것이 아까워 일부러 몇 페이지는 읽지 않고 남겼다가 저녁에 읽는다"고 하신다. 맛있는 것 아껴 먹는 것이나 진배없다. 신문 읽기를 즐기는 이들은 대체로 책과도 친하다. 대단한 독서가로 알려진 60대 중반 백모씨는 매달 상당 분량의 책을 구입한다. 물론 다 읽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읽지 못해도 나중에 나이 들고 시간 많을 때 읽을 책이 방에 한가득 있는 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부자가 된다"고 말한다. 글을 가까이 하고 지내는 노년들은 한결같이 무언가 매일 새로 배우는 것이 좋다고 한다. 글을 읽으며 생각을 하게 되고 기억력도 좋아지고, 내적인 충만감을 얻는다고 한다. 더불어 오는 좋은 낯빛은 덤이다. 예전에 어느 시니어와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다. "하루 일과 어떻게 보내세요?" "눈 뜨면 오늘은 뭐할까 그게 가장 큰 고민이야. 인터넷 여기저기 클릭하고 가끔 야동도 보고…시간이 너무 많으니까 아침에도 짐(gym)에 가고 저녁에도 가고 하루 서너시간은 짐에서 보내. 뭐 시간 보내기 좋은 거 없을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많아지는 시간, 그걸 때우는 것이 고민이라는 시니어들이 적지 않다. 대개 글과 담을 쌓고 사는 이들이다. 가끔 시니어들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즐겨한다면 그것은 노년을 행복하고 보람있게 보낼 수 있는 매우 소중한 무기를 지닌 것"이라고. 나이 들면서 외적인 것들은 대개 비슷해진다고 한다. 글을 가까이 하며 배우고 익히는 내적 충만감이야말로 진정한 노년의 부요함이요, 글은 그 샘이 아닐까. "당신은 책이라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당신은 분명히 생활 가운데 부질없는 야심과 쾌락의 추구에만 열중하고 있을 것이다."(볼테르) 책이든 신문이든 글을 벗하며 내적 즐거움을 누리는 시니어들의 모습을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 글이 주는 즐거움과 행복감을 더 많은 사람들이 누렸으면 좋겠다. 신문을 벗하기 시작한 친구여, 자네는 충만한 노년을 위한 중요한 자격증을 하나 갖췄네. 이원영 / 논설실장

2017-10-31

[진맥 세상] 적폐, 골병으로 가는 길

고혈압이나 당뇨로 약을 복용하고 있는 이들은 대개 의사들로부터 식생활을 개선하고 적당한 운동을 하라는 주문을 받는다. 그렇게 해서 몸을 정상으로 만들면서 서서히 약을 끊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받는다. 고혈압·당뇨는 대표적인 '생활습관병'으로 꼽힌다. 그러나 생활을 바꿔 건강을 되찾고 약에서 해방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사람이 병에 걸리는 과정은 대개 비슷하다. 나쁜 습관을 지속하고, 탈이 나면 약으로 눈가림해 정상인 것처럼 착각하고, 약 때문에 부작용이 오면 또 다른 약으로 땜질하고, 그러면서 몸은 속으로 골병이 든다.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후회를 한다. 식생활 개선, 적당한 운동이 좋다는 건 누구나 안다. 병을 부르는 사람들은 '알면서도 안 하는' 사람들이다. 운동할 시간이 없다, 입맛을 바꾸는 것이 쉽냐 등의 변명이다. 게다가 당뇨·고혈압이 집안 내력이라는 둥 '유전'을 내세우며 몸의 비정상 상태를 합리화하기도 한다. 그렇게 잘못된 생활습관이 이러저러한 핑계로 지속되다보니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적폐(積弊)'가 되어버린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라는 뜻이니 잘못된 생활습관이 쌓여 결국은 치명적인 병을 부를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되어 버림을 말한다. 세계적인 위장전문의로 미국의 유명 정치인과 연예인들의 건강 멘토 역할을 해온 신야 히로미 박사는 "병은 자신이 오랫동안 쌓아온 나쁜 습관의 결과"라고 단언한다. 그는 저서 '병 안 걸리고 사는 법'에서 "올바른 식사법과 생활습관을 유지한다면 인간은 병이 날 이유가 없고 125세까지 천수를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부모들이 암·당뇨·심장병·고혈압 등이 있어 유전이기 때문에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이 부질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이에 대해 히로미 박사는 "자식이 부모와 같은 질병에 걸리기 쉬운 것은 유전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질병의 원인이 된 (식)생활습관을 이어받은 결과"라고 말한다. 생활패턴이 학습돼 같은 질병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의 말대로 결국 병이란 나쁜 습관이 쌓인 적폐의 산물이다. '쌓인다'는 것은 한의학에서도 병의 중요한 원인으로 꼽는다. 열(또는 냉기)·피·체액(진액) 등이 쌓이는 것은 모두 병의 증상들이다. 뭉치고 쌓인 것을 풀어주고 잘 흐르게 해주는 것이 한방 치료의 핵심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적폐청산'을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새 정부는 지난 정권 시절에 빚어진 비리와 구조적 폐습을 단죄하고 청산해야 새로운 나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의지를 피력한다. 반면 야당이 된 자유한국당 등 보수세력들은 적폐청산이라는 미명을 앞세운 정치보복이라고 반발한다. 보수층 일각에서는 안보가 엄중하고 경제가 위기인데 현정부가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있다며 탐탁찮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적당히 덮고 넘어가자는 뜻일 게다. 일제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발족했던 반민특위가 친일파와 이승만 정부의 조직적인 반발로 1년 만에 해체돼 친일 청산의 역사가 좌절된 이후 '적당히 덮고 넘어가기'는 대한민국의 '생활습관'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때 친일파들이 반민특위 해체 구실로 삼은 게 반공·경제·안정인데 70년이 지난 지금도 똑 같은 논리로 적폐청산에 반대하고 있으니 시간이 멈춘 듯하다. 잘못된 생활습관이 쌓여 돌이킬 수 없는 병을 부르듯, 비리와 구조적 폐단을 청산하지 않고 적당히 덮고 간다면 나라의 골병은 깊어진다. 적폐청산은 '잘못된 습관'을 없애 건강한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것에 반대한는 것은 골병든 나라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자는 말과 다를 게 무엇일까. 한의학 박사 이원영 / 논설실장

2017-10-24

[진맥 세상] 나는 너에게 어떤 사람일까

어느 누구와 함께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에너지를 얻는다. 헤어지고 난 다음에도 즐거운 여운이 한동안 지속된다. 누구와 함께 있으면 그 자체로 불편하고 에너지를 빼앗기는 느낌이 든다. 떨어져도 찝찝하다. 사람을 만나면 서로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누구나 겪었을 터. 한의학에선 이를 '파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주 삼라만상은 거대한 파장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이 가까이 있다면 필연 그 파장은 상대방과 교감한다. 그 파장은 자석의 극처럼 서로 끌릴 수도 있고, 밀어낼 수도 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끌리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관계는 좋은 파장을 주고 받는 사이다. 이처럼 사람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주고, 그것이 잔물결 퍼지듯 눈 앞의 사람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 나아가 사회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방대한 연구로 밝혀진 바 있다. 의사이자 사회학자인 니컬러스 크리스태스키 교수(하버드대)와 제임스 파울러 교수(UC샌디에이고)가 쓴 책 '행복은 전염된다(Connected)'는 감정·건강·행복·정치 등 다방면에 걸친 인간관계에 관한 연구를 담았다. 이들은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1만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인간의 상호 관계를 추적했고 그 결과 '3단계 인간관계의 법칙'을 찾아냈다. 나의 친구(1단계)가 행복하면 나의 행복지수는 15% 상승하고, 2단계(친구의 친구)가 행복하면 10%, 3단계(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행복하면 6%의 행복지수가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러스처럼 행복이 전염되는 것이다. 4단계부터는 영향이 없었다. 이런 영향은 감정만이 아니라 행동에도 비슷한 영향을 끼친다. 비만인 친구 주변에 비만이 많고, 부자 주변에 부자가 많고, 건강한 사람 옆에 건강한 사람이 많은 이유다. 나와 친구 사이는 1단계지만 친구는 또다른 1단계 관계들이 있다. 따라서 나와 친구와의 관계가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파장처럼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나의 말과 행동이 전이되고 있다.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을 보자. "감정 전이의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다. 우리는 친구와 농담을 나누며 즐거워하고, 배우자가 울면 함께 슬픔을 느끼며,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온 아이를 꼭 껴안아준다. 기쁨과 슬픔의 감정은 우리의 친구뿐만 아니라 친구의 친구 그리고 그 너머까지 퍼져간다." 인간관계가 이러할진대 누구라도 다른 사람에게 행복의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행복해져야 한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은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왜 그럴까. 행복과 자기계발 전문가로 '뷰티풀 라이프 부트캠프'를 창립한 엘리스 고먼은 허프포스트 기고에서 '우리의 행복을 가로막는 18가지 요인들'을 알려준다. 자신의 내재적 가치를 잊어버리기/끊임없이 비교하기/감사하지 않기/자기 마음과 직관을 무시하기/자존심 내세우기/지금에 만족하기/너무 많은 생각/증오와 분노/남의 시선 신경 쓰기/항상 바쁘기/완벽한 순간 기다리기/사소한 것에 집착/지금 행복을 나중으로 미루기/상대에 대한 높은 기대감/부정적인 해석/과거에 집착/고정관념 매몰/말뿐이고 행동이 없는 것 등.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루미는 "당신이 할 일은 사랑(행복)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당신 내면에서 사랑(행복)이 자라지 못하게 막는 모든 장애물을 찾아내는 것이다"고 뒷받침했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 바이러스를 전염시켜주고 있을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내가 나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므로 스스로에게 물어볼 일이다. 이원영 / 논설실장

2017-10-18

[진맥 세상] 북유럽을 동경하는 한국인들

추석 명절을 맞아 고향(부산)에 계신 아버지께 안부 전화를 올렸다. 어떠시냐고 인사치레를 하자 불쑥 나라 얘기를 꺼내신다. "아이구, 요새 나라가 말이 아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야.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난리고, 서민들은 먹고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하고, 전쟁이 나니 안나니 하고, 뭐가 편안한 구석이 없어." 툭 하고 던진 아버지의 짧은 말씀이 지금 한국살이를 그대로 압축한 표현으로 들려 마음이 묵직했다. 물론 긴 추석 연휴를 맞아 엄청난 인파가 해외여행을 즐기고 서울은 여전히 흥청거리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서민들, 젊은이들에게 한국땅은 여전히 생존을 다투어야 할 무대요, 떠나고 싶은 '헬조선'이다. 한 치도 긴장을 놓칠 수 없는 무한 경쟁, 물질로 획일화 되어가는 단일가치 사회, 행복이 무엇인지 근원적 질문을 할 여유도 없이 속도경쟁 속으로 사람을 밀어붙이는 가혹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과연 어떤 숨을 쉬고 있을까. 아직도 학교에 다니는 자식들을 키우며 경쟁 스트레스로 꽉 찬 한국사회를 버텨가고 있는 동생들을 생각하면 내가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요즘 한국에서 일종의 문화현상이 되고 있는 '휘게 라이프'는 아버지의 말씀대로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휘게(Hygge) 는 '좋은 사람과 보내는 아늑하고 즐거운 시간'을 뜻하는 덴마크 말. 삶의 레이스에 지친 한국의 현대인들은 휘게로 대표되는 '북유럽 라이프스타일'을 동경하고 이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북유럽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관심은 10여년 전부터 소개되었으나 한때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갈수록 공감을 얻으면서 이제는 하나의 삶의 대안모델로서 인식되고 있다. 한국식 무한경쟁 사회 시스템에 대한 반작용인 셈이다. 매년 국민행복도 조사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 국민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연구하고, 경험하고, 지식을 나누는 온오프 모임도 갈수록 인기를 더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북유럽 '덕후'(마니아의 속칭)들은 한국과 미국 같은 신자유주의 경쟁사회에서 사는 사람들과 북유럽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의 기준이 어떻게 다른지 간파한다. 이들은 촛불을 켜놓고 가족들과 아늑하고 정다운 저녁식사를 즐기는 가족중심의 문화, 소박하고 건강한 식단, 환경 중시, 신뢰받는 국가, 소득의 형평성 등 우리가 갖지 못한 것들이 행복의 원천임을 깨닫는다. 그 반대의 모습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라면 사람들은 참 행복을 느끼지도 못한 채 생존에만 허덕이다가 소중한 삶을 탕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위기의식도 보인다. 덴마크 국민의 행복의 원천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에 현지를 수차례 방문하고 수백명을 인터뷰한 기록서인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쓴 오연호 기자는 덴마크인의 사회 관습법인 '얀테의 법칙'을 소개한다.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다른 사람보다 잘났다고 착각하지 말라 ▶다른 사람을 비웃지 말라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 말라 등의 내용인데 국민 정서의 바탕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그는 '행복한 사회가 행복한 개인의 원천'이라고 결론짓는다. 그 행복의 원천을 6개 키워드로 압축했다. 자유(스스로 선택하니 즐겁다), 안정(사회가 나를 보호해준다), 평등(남이 부럽지 않다), 신뢰(50% 세금이 아깝지 않다), 이웃(의지할 수 있는 동네 친구가 있다), 환경(직장인 35%가 자전거 출퇴근)이 그것이다. 물질 중심의 미국적 가치관이 지배하고 있는 미주한인들의 삶, 우리도 그들처럼 행복할 수 있을까? 이원영 / 논설실장

2017-10-10

[진맥 세상] 세계 민간인 총기 42% 미국에

희대의 참사다. 한 사람의 순간적 사이코 범행이 60여 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500여 명의 부상자를 낳았으니 '역대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이다. 콘서트에 열광하는 2만여 명의 빼곡한 군중을 향해 자동소총으로 수천 발의 실탄을 난사한 이 장면을 과연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번 참극은 9·11 테러로 받은 충격 다음으로 미국인들에 강력한 트라우마를 새겨놓았을 것이다. 이런 대형 총기 참극이 거의 매년 발생하고 있어도 총기규제보다는 총기 소지의 권리가 더 중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지는 이 나라, 시쳇말로 "이게 나라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인터넷 매체 Vox는 각종 통계 자료를 인용해 총기 소지를 합법화하는 선진국 중에서 유독 미국에서 총기 범죄가 만연하고 있는지 심층 분석했다. 대형 총기참사가 발생하면 오히려 총기소지의 권리를 주장하는 여론이 높아지는 미국인들의 독특한 심리구조도 짚었다. 통계가 보여주는 미국의 총기 사건 관련 통계는 충격적이다. 미국의 인구는 전세계 70억 인구의 4.4%에 불과하지만 전세계 민간인이 소지한 6억4400만 정의 총기 중에 무려 42%를 미국인들의 소지하고 있다. 물론 단일국가별 총기 사망 숫자도 가장 많다. 인구 100만 명당 총기 사망자 숫자(2012년)를 비교했을 때 호주 1.4명, 독일 1.9명, 캐나다 5.1명, 스위스 7.7명에 비해 미국은 29.7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워싱턴포스트 분석에 따르면 미국에서 총기 사건은 거의 매일 발생하고 있다. 연간 336일(복수 발생 포함) 간 총기사건이 발생하고 있으며 범인을 포함해 4명 이상 숨진 대형 참극은 연간 355건에 이른다. 미 전역에서 매일 작은 전쟁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근래 들어 대형 총기사건은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총기 규제에 대한 여론은 지난 20년간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기억나는 참사만 해도 컬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올랜도 나이트클럽 참사 등이 이어졌지만 미국인들의 총기 구입은 오히려 늘어나고, 총기제조사의 주가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인들은 총기 소지를 허용한 수정헌법 2조에 의거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총기를 소지한다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많아진 총기는 더 많은 참사를 낳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Vox는 "총기 사건이 발생하면 잠깐 총기 규제 논의가 제기되지만 이내 흐지부지 되고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으며 죽지 않아도 될 죽음은 계속 되고 있다"고 맺고 있다. 암담한 일이다. 더구나 이번 참극을 부른 범인 스티븐 패덕(64)은 부유한 은퇴생활을 하고 있던 수백만 달러 자산가라는 사실이 알려졌으며 사회에 대한 어떤 복수심에서 불특정 다수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을 만한 동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아주 멀쩡한 사람임에도 이런 가공할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인데, 앞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에 어찌 편안한 마음으로 참석할 수 있을까 싶다. 총기소지 권리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2조는 1791년에 만들어졌다. 그 내용은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State)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 이는 국가가 개인의 재산과 안전을 책임질 수 없었던 개척시대에는 필요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200년도 더 지난 지금도 그 규정이 금과옥조처럼 살아있다는 것은 총기로 재미를 보는 음험한 카르텔과 그들이 유포시키는 도그마, 그리고 그에 세뇌된 민중들 탓이 아닐까. 이원영 / 논설실장

2017-10-03

[진맥 세상] 건강 해치는 '건강 맹신'

맹신(盲信). 국어사전에는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덮어놓고 믿는 일'이라고 풀이한다. '맹'이라는 한자를 보면 눈 목(目)에 망할 망(亡) 자가 합쳐졌다. 눈이 망했으니 볼 수 없다는 말이다. 볼 수 없거나 보지 않으려 하는 것,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 맹신이다. 맹신에 사로잡히면 발전이 없다. 갇힌 사고방식에서는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맹신의 아집에서 벗어나 사고의 성장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정치든, 종교든 어떤 신념체계가 필요한 것에 맹신이 붙으면 합리적 인간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건강문제에 대한 맹신은 병을 악화시킬 수 있어 더 위험하다. 많은 이들이 맹신하는 '건강 수칙'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면 버려야할 '비건강 수칙'일 수 있다. 툭 하면 아프고 잘 낫지 않는 사람이라면 특히 다음과 같은 세컨드 오피니언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병은 약으로 고친다?=대부분의 병(증상)은 몸의 자기 회복력으로 낫는다. 약은 증상을 잠깐 없애줄 수는 있어도 원인치료를 하지 못한다. 오히려 약은 저절로 낫는 치유과정을 방해해 회복시간을 늦추고 다른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특히 장기복용 약은 약에 대한 의존성을 키워 건강 회복을 불가능하게 할 수 있다. ▶잘 먹어야 건강하다?=당뇨, 고혈압, 심혈관질환 등 현대 성인병의 대부분은 과식, 과영양에서 비롯된다. 과식은 피를 탁하게 하고 면역력을 약화시킨다. 배가 고플 때 면역 첨병인 백혈구는 활동이 활발해져 암세포 등 각종 세균을 잡아 먹어 피가 깨끗해지고 면역력이 높아진다. 과식·화식(火食)·육식을 소(식)·생(식)·채(식)로 바꾸어야 무병장수 할 수 있다. ▶삼시세끼 꼬박꼬박?=시간 맞춰 식사를 하는 동물은 지구 상에 인간밖에 없다. 매우 비자연적인 식습관이다.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시간이 되었다고 먹어대니 과식, 과영양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한두 끼 걸러도 아무 상관 없다. 그 시간에 피가 깨끗해진다고 믿고 배고픔을 즐기는 것도 좋은 태도다. ▶고기 많이 먹으면 살찐다?=비만의 주범은 밥, 밀가루, 빵 등 탄수화물이다. 우리 몸은 일정한 포도당 수치를 유지하고 남는 것은 지방으로 축적한다. 뱃살을 빼고 싶다면 탄수화물을 줄이는 것이 지름길이다. 탄수화물을 줄이면 체내에서 모자라는 포도당은 단백질을 분해해 만들기 때문에 살이 빠진다. ▶운동하면 살 빠진다?=어느 정도까지는 빠지지만 그 이상은 아무리 운동해도 안 빠진다. 운동양이 적은 단계(하루 1시간 정도 걷기)에서는 에너지 소비량이 운동량에 비례하며 살이 빠지는데 그 이상 운동을 하면 몸의 에너지를 더 이상 쓰지 않고 기초대사량 중에서 면역소요 에너지를 활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도한 운동은 성장 억제, 배란 감소, 정자 DNA파손 등의 부작용을 가져온다. 마라톤 같이 몸을 혹사하는 운동은 피하는 게 좋다. ▶물을 많이 먹어라?=지나친 수분 섭취는 몸을 차갑게 만들어 지방·당분·요산 등 노폐물 연소와 배설을 방해한다. 이는 고지혈·고혈당·고요산혈증 등을 부를 수 있다. 체온이 낮아지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저온을 좋아하는 암세포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준다. 갈증을 해소할 정도의 수분을 섭취하는 것으로 족하다. ▶투병(鬪病)하면 병을 이길까?=병(증상)과 싸우면 싸울수록 이기기 어렵다. 병을 우리 몸을 괴롭히는 적으로 보고 이를 제거하려는 시각이 현대의학이지만 자연의학에서는 병(증상)을 우리 몸이 나쁜 것을 스스로 이겨내는 치유과정으로 본다. 암조차도 몸의 노폐물을 제거하려는 몸의 생존현상으로 보기도 한다. 이 때문에 병을 '제거'하려고 싸우는 것보다는 다스려서 스스로 물러나게 하는 치병(治病)이 건강을 찾는 길이다. 자연건강 전문가(한의학 박사) 이원영 / 논설실장

2017-09-26

[진맥 세상] 무릎 꿇은 장애학생 엄마들

6년 전 미국인 농아 20여 명을 대동하고 서울과 제주 4박5일 여행을 함께한 적이 있다. 농아인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데프네이션(Deafnation)'에서 신청을 받아 한국 방문 희망자를 모집했던 것이다. 당시 동행 취재기자로서 이들과 일정을 같이 했던 나는 시종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인들이 과연 외국 여행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일찌감치 깨졌다. 이들의 표정은 여느 정상인들의 단체여행 모습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상기되었고, 흥이 넘쳤다. 말을 대신한 수화는 어지럽게 난무했고, 웃음과 호기심, 모험심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식을 줄 몰랐다. 이들은 안내 없이도 손짓과 표정으로 물건값을 깎았고, 때밀이도 즐겼으며, 노래방에서는 리듬과 비트만으로도 열광적인 시간을 보냈다. 장애가 있어 주눅들고,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이라 여겼던 나의 고정관념은 여지없이 깨졌다. 한국의 장애인들이라면 과연 저렇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었을까,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데프네이션의 기억이 불쑥 떠오른 것은 최근 소셜미디어에 유통되고 있는 안타까운 동영상 때문이다. 서울 강서구에 장애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가 세워지는 것을 놓고 주민토론회가 열린 자리였다. 장애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들은 "우리에게 욕을 해도, 때려도 감수하겠습니다. 그러나 아이들 학교는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라고 무릎을 꿇고 읍소했다. 그러나 방청객을 가득 채운 주민들 속에서는 날아온 말은 "(학교 보내는 건)알아서 해" "쇼하지 마라"는 야유와 고성이 날아왔다. 장애학생 부모의 가슴을 후비는 잔인한 말의 화살이었다. 장애아 부모들 십 수명은 연단에 나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주민들의 이해를 호소했지만 이날 토론회는 장애인을 수용하는 특수학교에 대한 주민들의 강한 거부감만 확인하고 끝났다. 표면적으로 주민들은 이 학교 부지에 국립한방병원이 들어설 것을 주장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인식은 장애시설이 들어서면 인근 집값이 떨어진다는 집단심리가 작동했다는 것이다. 결국 특수학교를 '혐오시설'로 인식하고 '내 뒷마당에는 안돼(Not In My Backyard)'라는 님비(NIMBY) 현상의 전형을 보여주었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특수학교 기피 현상은 강서구 뿐만 아니어서 향후 설립 추진되는 전국 19개 학교가 대부분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몸이 불편한 장애학생들은 한 시간도 넘게 걸리는 다른 지역 학교에 통학하는 것은 물론, 기존 특수학교는 미어터져 교육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장애학생들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특수학교를 반대하는 부모들, 이런 부모들의 언행을 지켜보고 자라는 아이들은 장애인에 대해 어떤 시각을 품게 될까 불문가지다. 미국은 가정이나 학교에서 철저하게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하지 않도록, 그리고 그들도 정상인과 똑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음을 교육시킨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취약한 한국에서 살았던 이들이라면 미국의 장애인 배려가 '정상인에 대한 역차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도하다는 인상까지 받는다. 그런 사회 환경과 사람들의 배려심 속에서 장애인들은 주눅들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때, 데프네이션 취재 후 썼던 칼럼의 맺음글을 다시 써본다. "신체적으로 듣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정상인이라도 남의 말에는 귀를 막고 독이 묻은 말을 쏟아내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이들이야말로 기능적 농아인이 아닐까." 이원영 / 논설실장

2017-09-12

[진맥 세상] 문재인, 북핵 존재감 보여라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잠시 주춤하던 한반도 전쟁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이젠 '핵전쟁' '서울 불바다' 등 감내하기 힘들 정도의 불안감이 엄습한다. 미국의 선제공격 위협 등에 아랑곳 않고 북한의 핵 위협은 폭주의 길을 걷고, 이에 미국은 북한과 교역하는 모든 나라와 무역 관계를 중단하겠다는 세컨더리 보이콧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북한과 미국의 공포 경쟁 가운데 문재인 정부의 존재감은 초라할 정도다.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최고의 무력 증강' 목소리가 마치 모기 소리처럼 들린다. 북-미의 강 대 강 대결 구도가 고조될수록 한국의 역할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현재의 위기가 트럼프와 김정은 간의 개인적 담력 대결이라면 재미있게 구경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치킨게임은 수백만, 수천만 명의 생명이 걸려 있는 '핵전쟁'이 발생하느냐 하는 엄중한 문제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거론되는 군사적 옵션은 공멸의 길이다. 한반도는 물론, 일본, 괌, 심지어 미 본토까지 궤멸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군사적 옵션은 이기고, 지는 패싸움이 아니다. 전쟁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다는 것은 쌍방이 치유하기 힘든 재앙의 길을 가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특히 지금 같은 엄청난 무력이 오간다면 한반도는 역사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 전쟁이냐 평화냐의 길에서 마땅히 가야할 길은 평화다. 현재 북미 간의 '공갈 전쟁'이 계속된다면 러시안 룰렛처럼 어느 순간 '실탄'이 발사될 수 있다. 한반도와 미국민을 전쟁 공포로 몰아넣는 군사적 옵션을 만지작거려서는 안되는 이유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외교적 해법밖에는 없다. 평화를 갈구하는 사람으로서 트럼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에서 당부하고 싶다. 트럼프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 '(전쟁) 두고 보자' '북과 거래하는 모든 국가와 교역 중단' 등 제재 일변도로 나가지 말아 달라. 제재와 함께 대화의 시그널도 보내야 한다. 대화에 조건을 달지 말고 일단은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불러낼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런 엄중한 사태에 북한 문제를 다룰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도 선임되지 않는 등 북한 이슈를 제대로 컨트롤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서는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대한의 압박과 대화' 병행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 북핵 문제를 큰 틀에서 보지 않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있을 때마다 사드 임시배치, 한미 미사일 탄두 중량제한 해제, 미국의 전략자산 공개 요청 등 땜질식 근시안 대응에 그치고 있다. 한국은 북미 간 갈등 속에 실종되고 있는 존재감을 되찾아야 한다. 북-미 관계가 아닌, 북-미-한 3각 관계를 형성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 대통령의 광폭 행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미국과 북한을 향해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하고, 중국·러시아 정상에게 협조를 구해야 한다. 북한과 미국에 특사를 파견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평화정착 의지를 보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당당한 위상을 찾지 못하면 한국의 운명은 미국과 북한에 의해 좌지우지 될 비참한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 김정은 위원장은 전쟁 공포를 부추기는 핵·미사일 시험 발사의 동결을 선언해야 한다. 북한이 주장하는 대로 체제 생존을 위한 자위권 차원이라면 이미 그 목적은 달성했다. 더 이상의 무력 시위는 전쟁 공포로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국제사회의 비난과 고립만을 부를 뿐이다. 핵동결 선언은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고 한반도 평화정착의 길로 나아가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문재인·김정은 세 사람이 한자리에 앉는 극적인 장면이 하루 속히 펼쳐지길 기대할 뿐이다. 이원영 / 논설실장

2017-09-05

[진맥 세상] 국가 등친 '가족사기단' 재산 몰수해야

"최순실 일가는 돈이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손을 대지 않은 곳이 없다. 때와 장소는 물론이고 물불도 가리지 않았다. 최순실이 있는 곳엔 항상 박근혜가 그림자로 존재한다. 대통령의 위엄도, 권위도 체면도 다 내팽개친 박근혜는 무엇 때문에 최순실과 한 몸을 자처했을까. 박근혜가 정권을 잡은 다음엔 청와대는 물론 정부 조직도 이들의 사금고를 채우는 도구로 전락시켜 권력을 사유화했다." 지난 27일 LA에서 강연회를 가진 민주당 안민석 의원(4선)의 저서 '끝나지 않은 전쟁-최순실 국정농단 천 일의 추적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안 의원은 탐사전문 주진우 기자, 돈세탁 추적 전문가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등 일명 '독수리 5형제' 팀을 꾸려 독일을 5차례나 찾아가 최순실 해외 은닉재산의 실상을 파헤쳤다. 강연에서 안 의원은 최태민·최순실 일가의 40여 년에 걸친 부정축재와 해외 은닉재산 등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최순실의 은닉자금을 따라갈수록 그 의혹이 고구마 줄기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끝이 어디인지, 얼마나 많은 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직간접적으로 국정농단에 동원되거나 관련된 인물은 국내외 통틀어 300~400여 명에 이르고 기업만 해도 페이퍼 컴퍼니까지 합치면 1000개도 넘어 보인다." 최순실은 독일 은닉재산 문제를 제기한 안 의원에게 "찾을 수 있으면 찾아서 가져라"며 큰소리 쳤다고 한다. 그만큼 철저하게 숨겨놓았으니 절대로 찾아낼 수 없을 것이란 자신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 의원은 독일 페이퍼 컴퍼니 전문가 '가바리스'의 결정적 도움을 받아 최순실의 페이퍼 컴퍼니가 400여 개에 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최순실 일가는 최태민 사후 최순득·최순실·최순천이 재산을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지금은 정유라·정시호·장승호 등 3대로 계승되고 있다. 수천 억에서 수조 원으로 추정되는 최순실 일가의 재산이 대대로 증여된다면 국정농단과 그 처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언젠가 다시 불사조처럼 부활할 것이다." 안 의원에 따르면 최순실 일가의 해외 은닉자금은 독일은 물론 헝가리, 오스트리아, 리히텐슈타인, 스위스 등에도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심지어 미국 LA도 돈세탁 창구로 의심되는 인물이 있다며 향후 조사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순실 일가는 국내 조사를 피하기 위해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고 해산하는 반복적인 과정을 거쳤으며 여기에 연루된 수백 개의 회사명과 수백 명의 관련자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안 의원은 수십년에 걸친 최순실 일가의 행태를 '국가를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한 가족사기단'으로 규정하고 최씨 일가의 부정재산을 몰수하는 특별법을 제안한 상태다. 그러나 이 법안에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김성태 의원을 제외한 전원이 반대하고 있어 국회 상정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산을 추적하다보니 마디 마디마다 최순실이 연결되어 있더라는 말도 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은 반의 반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거대한 악의 뿌리는 아직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여러분의 깨어 있는 의식만이 정의를 세울 수 있습니다." 최씨 일가의 은닉재산을 이 정도 밝혀냈으면 검찰이 나서야 하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고 안 의원은 한숨을 쉬었다. 의회·사법부·행정부에 수십 년에 걸친 최태민 일가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부정재산 환수는 보수와 진보를 떠난 정의의 문제다. 최순실 일가의 부정축재 은닉재산은 반드시 몰수되어야 한다. 관련법 제정에 반대하는 의원들은 최순실 부역자란 오명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가를 사유물 삼아 거대한 축재를 한 '가족사기단'을 그대로 방기하면서 정의로운 사회를 말할 수는 없다. 이원영 / 논설실장

2017-08-29

[진맥 세상] '탄수화물 엔진' 50세면 시동 꺼야

얼마 전 영국 엘리자베스 2세(91) 여왕이 전혀 탄수화물을 섭취하지 않으며 그것이 건강의 비결이라는 외신이 눈길을 끌었다. 여왕의 전속 요리사였던 대런 맥그래디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여왕은 감자 같은 탄수화물을 섭취하지 않고 채소 샐러드와 생선을 주로 먹으며 다크 초콜릿도 그의 기호품 중 하나였다고 말한 바 있다. 언론들은 일제히 '여왕의 건강비결은 NO 탄수화물'이라고 제목을 뽑았다. 우리가 흔히 주식이라고 일컫는 밥, 면류, 빵 등이 탄수화물의 대표적 음식인데 이것들을 멀리하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니 특히 한인들에겐 고개가 갸웃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저탄고지'라는 이름으로 탄수화물을 줄이고 지방을 많이 섭취하는 다이어트가 유행하고 있다. '뱃살을 빼려면 탄수화물 섭취를 줄여라'는 이론은 널리 공감대를 얻고 있는 모양새다. 그런데 살을 빼는 것 뿐만 아니라 건강을 위해서도 탄수화물을 줄여야 할까. 50세 이상이라면 '병 없이 활기찬 노후생활'을 위해서 탄수화물을 끊거나 줄이는 게 좋다고 한다. 왜 그럴까. 하이브리드 엔진을 장착한 차량의 운행 원리를 보자. 낮은 속도에서 파워가 많이 필요 없을 때는 전기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움직이다가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리거나, 힘이 필요할 때는 개솔린이 주요 에너지로 쓰인다. 운행 상태에 따라 주 엔진이 바뀌면서 최고 효율을 내는 것이다. 기생충학과 감염면역학 분야 전문가인 일본의 후지타 고이치로 박사는 인체도 에너지를 생산하는 엔진이 2개가 있으며 50세를 전후해 주엔진과 부엔진이 바뀐다고 말한다. (아래 내용은 그의 책 '50세부터는 탄수화물을 끊어라'에서 인용) 두 개의 엔진은 '해당(解糖) 엔진'과 '미토콘리드아 엔진'이다. 해당 엔진은 당분(탄수화물)을 연료로 삼아(분해해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며, 세포 속 미토콘드리아 엔진은 산소를 연료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순간적인 동작이나 파워를 내는 해당 엔진은 50세 이하 젊은 층에서는 주엔진이다. 미토콘드리아 엔진은 순발력은 부족하지만 심장과 뇌세포처럼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필요로하는 부위에 공급한다. 따라서 대략 50세를 넘기면 미토콘드리아 엔진이 주엔진이 되어야 한다.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전기로 충분히 갈 수 있는데 엔진이 오작동을 일으켜 개솔린이 불필요하게 분사된다면 불완전 연소로 엔진에 손상을 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나이 50이 넘어 인체의 주력 엔진이 미토콘드리아 엔진으로 바뀌었는데도 탄수화물을 지속적으로 섭취해 해당 엔진을 가동시키면 인체의 불완전 연소 노폐물 격인 '활성산소'가 발생하게 된다. 활성산소는 면역기능도 하지만 과도하면 세포를 녹슬게 해 몸을 노화시키고 암·심근경색·뇌졸중·당뇨 등의 원인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50세 이후부터는 탄수화물을 줄여 해당 엔진의 활동을 억제하고 미토콘드리아 엔진을 주력 에너지원으로 써야 무병장수할 수 있다는 논지다. 특히 백미·우동·빵처럼 희고 정제된 식품을 피하고 유산소 운동을 늘리라는 것이다. 당뇨병을 두 번씩이나 앓았던 저자는 몸의 엔진 구조를 이해한 후 탄수화물을 끊어 70대 후반인 지금도 인도네시아 열대병 연구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50세 이후 육체의 엔진을 교체하는 것과 더불어 '영혼의 엔진'도 바꿔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나 중심의 물질적 이기주의라는 영혼의 엔진이 주력이었다면 공동체 중심의 가치적 이타주의가 50세 이후 필요한 영혼의 엔진이 아닐까. 육체와 영혼의 엔진을 교체한다면 인생 후반전은 Re-Tire(타이어 갈아 끼우기)로 달려갈 수 있을 것 같다. 이원영 / 논설실장

2017-08-22

[진맥 세상] '얼' 빠진 나라의 광복절 풍경

뉴스를 읽다가 보다가 가끔 눈시울이 젖을 때가 있다. 억울한 사연을 접할 때다. 이들의 원한과 좌절이 누군가에 의해 이해되고 풀어졌을 때 그 해원의 기쁨이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너무 너무 고맙지요. 이젠 죽기 전에 조그만 기여라도 하고 죽어야죠. 그동안 사는 게 아니었지요." 독립군 양성과 항일무장투장에 앞장섰던 독립운동가 김성생 선생의 손자 김동만(77)씨 부부. 서울 서대문구가 생활이 어려운 독립·민주운동가 후손들을 위해 지어준 '나라사랑채'라는 아담한 새 집에 지난 14일 입주하면서 내놓은 소감이다. 중국에서 살던 김씨 부부는 27년 전 한국땅을 밟았으나 막노동을 전전해야 했다. 월세 35만원짜리 단칸방에서 궁핍한 생활을 하던 터였으니 뒤늦은 나라의 '보은'이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경남 고성에서 3·1만세운동을 주도했던 독립운동가 허재기 선생의 손녀 허성유(66)씨도 함께 입주한 15가구 중 한 명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하죠. 이때까지 고생한 것이 서글프고 원망스러웠는데 그런 감정이 없어졌어요." 가사도우미를 하며 살 곳이 없어 관악구와 영등포구를 떠돌며 살았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울음을 토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현충일 추념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겪고 있는 가난의 서러움, 교육받지 못한 억울함, 그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현실을 그대로 두고 나라다운 나라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독립운동가 한 분이라도 더, 그 분의 자손들 한 분이라도 더, 독립운동의 한 장면이라도 더, 찾아내겠습니다." 백번 지당한 말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뒤집힌 현실은 여전하다"고 말한 것처럼 가난한 독립운동가 후손, 떵떵거리는 친일파 후손들의 모습은 더욱 공고화되고 있다. 지난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 언론이 독립운동가 후손들 모임인 '광복회' 회원 1115명 전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이들의 월소득을 봤더니 200만원 미만 구간에 전체 75.2%가 몰려 있었다. 개인 총 재산도 국민 평균보다 훨씬 적었다. 월소득 200만원 미만 구간에 독립유공자 본인(38.4%)보다 자녀(72.2%)와 손자녀(79.2%), 증손자녀(62.2%) 비율이 더 높아 독립유공자의 '가난 대물림'을 여실히 보여줬다. 친일 청산이 되지 않은 나라였으니 독립유공자에 대한 '보훈'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던 것이다. 보훈의 역사적 과정을 살펴보면 기가 막힌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인물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이시영 부통령 딱 2명이었다. '대한민국'의 출발이 어떤 정신으로 시작되었는지 알 만한 대목이다. 5·16 군사정권은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독립유공자 선정작업에 나섰다. 공적심사위원회에는 대표적인 식민·친일 사학자 이병도와 신석호가 참여했다. 이들은 늙거나 사망한 1980년대 초반까지 번갈아 심사위원회에 참여했다.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보훈'이 광복 70년이 넘도록 제대로 되지 않은 역사적 '적폐'의 뿌리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독립운동가 가문도, 친일부역자 가문 출신도 아니다. 그러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가난의 대물림을 받아 아직도 국민 평균 이하의 삶을 이어간다는 현실을 납득할 수는 없다. 친일청산까지는 아니더라도 독립운동가인 '못난' 아버지를, 할아버지를 둔 죗값을 치러야 하는 나라를 '나라다운 나라'로 부를 수 있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생각은 아직 없다. 그러나 "독립운동가의 3대까지 합당한 예우를 받도록 하겠다"는 그의 말에서 그나마 '얼'빠진 나라를 구하려는 최소한의 의지가 읽혀 박수를 보낸다. 이원영 / 논설실장

2017-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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